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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위로공단>_ 마른 땅에 피어날 꽃들의 ‘희망가’

Nom1000 2015. 8. 11. 13:14

[영화] <위로공단>_ 마른 땅에 피어날 꽃들의 희망가




이야기는 1960-70년대 구로공단으로부터 시작한다. 60년대 본격적인 경제 개발이 시작된 이래 국가는 수출 증대를 목표로 제조업이 크게 성장했고, 이에 수 많은 10대 소녀들이 부푼 꿈을 안고 구로 공단으로 몰려 들었다. 하지만 산업화란 그늘 아래, 나약한 개인으로 상처 입고 고통 받았던 노동현장의 모습을 하나하나 풀어나간다.




칠흑 같은 꿈. 하지만 다시 돌아올 새벽


솜털이 제 가시지 않은 어린 소녀들은 누군가에겐 학업, 누군가에겐 가족, 누군가에겐 돈이란 부푼 꿈을 끌어 안고 거대한 공단 속에 아직 여물지 않은 몸을 내맡긴다. 하지만 정책, 경영이란 이름아래. 그 거대함 아래에서 소녀들의 부푼 꿈은 칠흑처럼 어둡고 깜깜할 뿐이었다. 한치 앞의 미래도 바라 볼 수 없는 막연한 꿈일 수 밖에 없고 그런 꿈마저 사치인 듯 얄굿은 새벽은 어김없이 밝아와 소녀들은 다시 공단 속 여공 1, 여공2가 된다


감독은 이 시대의 이야기만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구로공단구로디지털단지로 변모했지만, 공장 속 여공 1, 여공2는 빌딩 숲 속 미생 1, 미생 2로 이름만 바뀌었다.


여기 현재, 빌딩 숲 속 어딘가 결혼 및 출산으로 인한 경력 단절의 이미지를 벗지 못한 여성들이 있다. 그들은 제조업, 서비스업 부문의 또 다른 노동 현장에서 불안정한 고용과 감정노동 등의 또 다른 노동 방법으로 고통 받고 있다. 마트 캐셔, 항공사 승무원, 콜센터 직원, 반도체 제조 노동자들이 그들이다.


또한 현대의 한국에서 사라진 1960-70년대 구로 공단의 모습은 시공간을 거슬러 베트남 , 캄보디아 등지의 동남아시아로 옮겨간 모습을 보여준다. 아래의 기사는 영화의 그 의도를 분명하게 밝혀준다.  


지친 그녀들의 얼굴 위로 학교에 다니고 싶지만 가족 부양을 위해 꿈을 포기한 채 공장으로 내 몰려야 했던 60-70년대 한국 소녀들의 얼굴이 겹쳐 집니다. 그 많던 여공들이 사라지고, 식모도, 버스 차장도 더는 볼 수 없지만 우리 눈 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모든게 끝난건 아닙니다.[1]



마른 땅 위에 피어날 꽃들의 희망가


지나간 그리고 여전히 진행 중인 그들의 삶의 이야기가 다소 비극적이고 서글플 수는 있으나, <위로공단>이 관객들에게 말하고 있는 결론은 결코 비극적이지만은 않다. 영화제 중 감독과의 인터뷰에서 감독은 말한다.


영화로 하여금 그분들의 위로가 되고자 했지만, 실제로 영화를 제작하면서 오히려 (그 분들께) 위로를 받았다. 이런 분들이 현시대의 희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것은 영화의 예고편 안에서 더 분명하게 재발견할 수 있다.


나는 내 삶을 후회하지 않아요

나는 그냥 이것도 삶이라고 생각해요. 그냥 내 삶은 이랬던 것이라고 생각해

모두의 행복을 찾기 위한 우리 모두의 이야기


이들의 이야기는 슬프지만 덤덤하다. 그들은 과거를 잊지 않고 살아가지만 그 삶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들의 삶은 그것만으로도 비극적이지 않으며 충분히 희망적이다. 감독의 인터뷰처럼 영화 속 그들을 통해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삶의 위로를 얻고 돌아간다.

 




임흥순, 그가 이야기하는 법


감독은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린 영화, 혹은 영화 형식을 빌린 다큐멘터리를 통해 대중의 기억에서 잊혀져 가는 이야기들을 섬세하게 풀어내고 예술로 재구성했다.


이야기를 짜내는 작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야기를 대변해서 말해주는 배우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실제 인물을 통한 인터뷰를 통해 각자 삶의 주인공으로서 살아왔던 이야기들을 그 감정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섬세하게 들려준다. 삶을 회고하며 흘리는 눈물과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씁쓸함은 잔잔하게 관객들의 심장을 적시며 다가온다.


기존의 영화들이 이야기이미지를 동일 선상에서 다뤘다면, 임흥순감독은 실제 인물들의 인터뷰를 이야기’, 감독의 예술적 영상을 이미지로 분리했다. 전 작품 <비념>을 통해 기틀을 다진 이 기법은 <위로공단>을 통해 이야기와 이미지의 분리가 좀더 견고해졌으며, 그 구성이 더 풍부해졌다. ‘이야기를 해주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감독의 비유적 이미지를 설명된다. 직접적이고 사실적인 이야기에 상응하는 그날의 이미지가 아니라 일상 속 이미지들, 새벽의 신물배달, 일개미, 까마귀 떼, 도살되는 돼지 등의 이미지를 통해 간접적으로 보여준다이러한 예술적 영상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보다 극적으로 만들어준다. 한가지 더 주목하고 싶은 것은 영화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는 행위예술 이미지이다.





초반부 얼굴이 전부 가려진 여공은 개인의 권리를 박탈당한 채 살아가던 모습을 보여주며 그럼에도 시작되는 소통을 보여준다

얼굴가리개를 벗었지만 여전히 눈가리개를 하고 있는 여성은 부당함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된 모습을 보여주며 그리고 조금씩 달리기 시작하는 여공은 제 권리를 찾아 점진적으로 나아간다.

가려진 눈으로 더듬더듬 벽을 더듬으며 집을 찾아가는 소녀는 우리들의 어머니를, 눈 가리개를 벗었지만 여전히 얼굴을 가리고 있는 소녀에서는 권리는 찾았지만 사회적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보여주는 여성은 얼굴을 아무것으로도 가리고 있지 않지만 군중과는 소외된 회색 이미지와 표정 없는 얼굴이다.


감독은 시대에 따른 여성 노동자들의 모습의 변화를 행위예술로 표현해 본인이 하고 싶었던 말을 스크린으로 전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화려함의 이면에 대해서도 보여준다. 전작 <비념>에서는 제주 4.3 사건을 다루며 과거는 잊혀진 채 관광지로의 모습을 담아 대조적 이미지를 표현했고, <위로공단>을 통해서는 가산/구로 디지털단지의 화려한 번화가의 모습과 야경의 모습을 담아 화려함 속에 믿기지 않는 썩어 들어가는 이면에 대하여 이야기 하기도 한다.


 


 

영화는 어린 소녀가 불러주는 희망가로 엔딩 크레딧을 마무리한다.

마지막까지 자리를 뜨지 못하게 만드는 영화의 여운이 담긴 이 노래는 

영화가 끝난 후에도 잔잔한 감흥으로 남는다.



희망가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은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히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또다시 꿈같도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은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담소화락에 엄벙덤벙 주색잡기에 침몰하랴


세상만사를 잊었으면 희망이 족할까

 


 




[1]다 지난 일이라고 말하지 마라임흥순의 위로공단’”, SBS(Internet)뉴스, 출처: news.co.kr/news/endpage.do?newld=N10029773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