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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생활

[연극]<더파워(The Power)> - 내면까지 화려한 자본주의를 꿈꾸며

Nom1000 2015. 7. 10. 00:52

[연극]<The Power>- 내면까지 화려한 자본주의를 꿈꾸며 


연출 알렉시스 부흐(Alexis Bug)

작   니스 몸 스토크만

출연 박윤희 하성광 유정민 김승환 김신록 금정원 유승락 정현철 박찬희 박시영 윤소연 정찬호 서지영


공연기간 2015.06.05 - 06.21

(공연종료)

공연장소         명동예술극장




비르크는 어느 날 책상 위에 놓인 한 장의 편지를 받는다 그 편지 봉투에는 「비상시에만 열어보시오.」 집과 회사만을 반복하며 피로 사회에서 피로하게 살고 있는 비르크의 삶 자체가 극의 비상시를 이야기 하는 듯 보이지만 그 자신은 인지하지 못하고 편지의 발신인을 찾기 위해 회사의 상층으로 향한다. 그가 도달하는 각 층은 극의 각 부로 나뉘어 1부 성곽, 2부 타워, 3구름편으로 이어진다.





1_’성곽자본주의의 전장, 그리고 병정 인형


쟁이 없다면 여기 모든 것은 혼란에 빠질 것이다

전쟁이 없이는 일자리가 없다.

일자리가 없다면 급여가 없다

급여가 없으면 전자제품 소비자가 없다

전자제품 소비자가 없다면 전쟁으로부터 기분전환을 하고 쉴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전쟁을 해야만 한다.


1부는 ‘초록 군인의 이야기를 통해 극은 어리석은 자본주의의 합리화 논리를 보여준다.


많은 이들이 이를 두고 과거의 자본주의라고 이야기 하지만, 현대 시장 논리와 다를 바는 없다


우리는 자본 사회를 품고 살아가면서 그것이 선순환이건 악순환이건 간에 어느 누가 그 부조리의 순환고리를 끊을 수 있겠는가

자본주의는 부조리를 양산하지만 그것을 대체할 체제는 미흡하고, 우리는 자본주의 안에서 그 부조리들을 무시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들에 눈이 멀어 있지 않던가


「우리는 전쟁을 해야 한다. 그들을 밀어내고 우리가 옳다는 사실을 그들이 고백할 때까지.


여기서 전쟁은 자본주의사회이며, 우리는 자본주의의 일부다. 그들은 극중 잠자는 이들로 전쟁 종결시킬 수 있는 자들 자본주의비판론자이자, 새로운 해결책 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초록군인들처럼 자본주의 사회의 전장판에 놓여져 있는 의사를 잃은 병정 인형들과 같다. 이 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가 종결을 맞이하지 않는 이상.






2_ ‘타워한계에 부딪힌 현대 시장경제 & 시장 권력의 단면(男女, 貧者/富者)


인간은 역사의 시초부터 물물교환을 시작했고, 화폐를 만들어 사용했다.

군주제가 힘을 잃기 시작함과 동시에 시장이란 개념이 발생했을 때부터 자본은 새로운 권력을 만들어 나갔다

자본이 쌓아 올린 자본의 기둥은 현대 사회를 대변해 주는 그 모든 기준이자 척도가 되었다.


시장 형성시초에는 경제 성장의 한계를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막힘 없을 것 같이 승승장구하던 시장은 어느 순간 사상누각처럼 무너져버렸다끊임 없이 성장할 것이라 믿었던 경제는 수많은 경제 위기를 연이여 발생시키며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는 화폐량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역설적으로 가난(빈익빈 부익부, 국가채무 등)만을 양산하고 있다.


그렇게 시장경제의 탄탄대로 시대, 생산만 하면 팔리던 시대(공급=소비, 공급<소비)는 지났다.



2부에서는 자본의 척도에 따른 시장 권력의 단면을 보여준다. 

그 권력은 유자본자(富者)와 무자본자(貧者)로 나뉘며 그것은 또 각각 남성과 여성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 권력 구조는 이전까지의 시장 성장 구조에 젖어 있는 권력자(남자임과 동시에 유자본자)가 변화와 혁신을 주장하는 세력으로 표현된 무권력자(여자임과 동시에 무자본자)를 철저하게 무시하고 비판하고 부정하는 모습으로 발현된다.


여기까지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허무주의가 주된 주제였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2부의 언저리에선 이 허무주의를 깨버릴 작은 돌파구가 하나 만들어진다

권력자에 의해 억압당하고 무시당하던 무권력자는 한발의 총성으로 분노를 표출한다. 그렇게 그 총성은 한동안 이어진다

행위 자체에 긍정성을 평가하는 것이 아닌, 행위로 하여금 자본주의의 보수성을 한층 꺾은 것에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3_’구름’ 개인의 변화 


「아무도 강요하지 않습니다.


3구름에서의 배경은 보다 더 추상적인 무대로 변한다.

자본주의의 역사나 이론 따위기 아닌 자본주의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 그 생태적 특성을 지적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본주의가 무엇인지(개념 및 원리 따위)를 알고 있으며 그에 대한 긍·부정적인 사안에 대해서도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그 거대한 개념 속에 가려진 개인을 조명하고자 하는 것이 3부의 주제다.


3부에서 끊임 없이 읊어 되는 「아무도 강요하지 않습니다.」는 분명 맞는 말인데, 아무도 강요하지 않는 이 사회에서 도대체 우리를 옭아매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극 중 ‘노숙자는 '나'에게 말한다

「시스템? 그건 저기 밖에 있는 것이 아니야. 그건 바로 자네라고! 자네가 그렇게 만든거지!



자본이라는 탐욕의 당근과 자본의 권력에서 낙후될 것을 두려워하는 채찍은 끊임 없이 현대인들이 스스로를 괴롭히도록 만들고 있다.


이러한 의도는 극의 연출가 알렉시스 부흐(Alexis Bug)의 인터뷰[1]에서도 드러난다.


「봉건 시대나 그 전 시대에는 실제로 억압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타인들로부터의 억압이 아니라 스스로를 억압하고 있다

대본을 처음 봤을 때 나는 내 생활을 떠올렸다.

매일 아침 일어나 뭔가 더 잘해보려고 노력한다. 다른 권위가 아니라 내 스스로 이런 억압을 한다.



비슷한 의도로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월든>에서는 이런 말이 있다.


「인간은 자기가 사용하는 도구의 도구가 되어버렸다.

허기질 때 과일을 따먹던 인간은 농부가 되었다

나무그늘에서 안식처를 찾던 인간은 집주인이 되었다

우리는 더 이상 야영을 하면서 밤하늘을 보지 않으며 땅 위에 정착했고 하늘을 잃어버렸다.



연출가 부흐가 말한 것처럼다른 권위가 아니라 내 스스로 이런 억압을 만든다

소로가 말한 것처럼 인간은 도구(=제도)의 도구가 되어 버렸다.



시장을 포용하던 사회(사회>시장)에서 이미 사회가 되어버린 시장(사회=시장)에서 살아 나갈 방법은 무엇일까.

제도의 도구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일까.



글로 쓰는 답은 간단하다스스로 억압을 풀어주는 것

사회를 탓하기보다 개인의 변화가 중요한 요점임을 연극은 말하고 있다

연출자 부흐는 관객들이 탐욕이라는 당근도 낙후자란 두려움의 채찍도 떨쳐내는 개인의 변화로 사회를 바꿔나가 주길 바라고 있을 것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는 말처럼 벗어날 수 없는 자본 기반의 사회에서 이왕이면 즐겁고 유쾌하게 살아보자 이거다. 극중 극의 엔딩을 고민하던 마지막 식탁 위 4인의 배우들의 부조리극 연기처럼 우리 역시 모두 내려 놓고 우리들이 살아가는 자본주의사회와의 공존의 엔딩에 대해 고민해 보는 것은 어떨까. 연극 피날레에서의 흥겨운 음악, 춤 그리고 코스프레처럼 개인에게도 내면까지 화려한 자본주의의 엔딩에 대해 우리 모두 고민하고 꿈꿔봤으면 한다.

 




작품 해석을 떠나서_ 한가지 아쉬운 것은 사실 나에게 있어 친절하다 느껴진 연극은 아니었다

연출가 부흐의 빠른 템포 성향이 극에 담김과 동시에, 작가의 극 서술방식 때문이라 여겨진다.


극은 끊임 없이 자신의 생각들을 나열한다


사건을 던져주고 관객이 생각하도록 방치하는 것이 아닌 작가 자신의 생각을 배우들의 입을 통해 빠른 속도로 읊어준다. 


개인적으로 그간 경험했던 극의 속도가 아니라 소설의 호흡이 옮겨진 극을 보고 온 느낌이 들었다

부조리극의 특성이 더해져 대사 속 의도와 상황 이해를 함께 해야 했다.



연출가와 작가가 의도 한 것이려니 생각하지만 관객들이 연극을 소통하며 바라본다기보다는 그들의 의도를 좇기 바빴던 것이 아쉽게 다가왔다.



[1] MK뉴스, “연극 더파워만든 독일 연출가 알렉시스 부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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