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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장> - 나 열심히 살았노라고, 쉽진 않았노라고 본문

영화 노트/영화 리뷰

<국제시장> - 나 열심히 살았노라고, 쉽진 않았노라고

Nom1000 2015. 1. 4. 20:42






열심히 살았노라고, 쉽진 않았노라고


아버지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내 아버지의 삶은 어땠을까 생각하게 된 영화였다. 어린 시절 바라보는 아버지의 등은 항상 넓고 듬직한 모습이었다. 내가 경험한 아버지는 태어나서 가장 빨리, 가깝게 접하는 어른이었고 그런 아버지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으로 단 한번도 힘든 내색을 보이신 적이 없었다. 그렇게 나의 아버지는 가장의 무게를 어깨에 짊어진 고독하지만 가장 위대한 그런 존재였고, 지금까지 그러하다. 



  그런 어깨너머로 영화 속 이야기의 끝자락, 방에 앉아 열심히 살았노라고, 쉽진 않았노라고 이야기하는 모습이 모든 아버지들이 한 사람으로서 아버지라는 역할을 내려놓고 이야기하고 싶은 말 못할 울분이며 한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아버지, 그는 가난으로 학업을 포기하기도 하고 맏이로서 혹은 가장으로서 자신을 포기한 삶을 사는 그런 모습이 담긴 세대를 살아왔다. 영화는 그 시대를 말하고 있다. 영화에 공감하고, 영화에 눈물 흘린 이들은 그들의 연기를 높이 산 것이 아니고, 유머코드를 높게 산 것도 아니다. 영상미를 높게 산 것도 아니다. 영화 전개를 진부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말하고 싶다. 그 진부함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나라의 중·장년층이 이야기 하곤 하는 그들의 술자리 넋두리는 아니었을까

 





놋수저를 아는가? - 극과 극으로 나뉘는 영화 평에 대하여.



눈물을 흘리는 이는 영화를 통해 할아버지의 삶, 아버지의 삶, 나의 삶을 볼 것이고 

영화가 불편한 이는 한 인물에 투영된 과도한 역사와 짐이 억지스럽다.



  이는 이를 테면 놋수저를 사용 하던 시대였다. 놋수저를 경험해 보거나, 어깨너머로 본적이라도 있는가가 이 극단적으로 대조된 평을 가르는 기준이 아닐까?

  알고 있기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려가며 영화에 공감했고 그것 때문에 객관적인 영화의 구성을 바라보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역으로, 놋수저를 모르기에 영화를 강요된 눈물, 감정의 호소라 이야기 하며, 영화의 공감을 놓쳐 영화를 가슴 벅차게 본 이들의 존재를 배제해 버린다



  놋수저, 그 시대를 경험해보거나, 들어보았거나,겪지 않않다 해도 영화의 주인공이 이해 된다면 영화를 접하는 평은 긍정적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억지스러운 전개와 영화라는 매개의 구성 등의 모습이 부정적인 평가로 이어질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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